네티즌이 뽑은 나쁜 광고가 이것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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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ainment.sportsseoul.com/snews/entertain/in/070609/20070609986437631000.htm 의 기사를 보면,
대부업체 광고들과 신용카드회사 광고들이 꼽혀 있다.
이것들은 과장, 주의할 (주의하지 않으면 치명적으로 위험할) 부분을 무시하게 하는 면을 가진 경우가 자주 있어
좋은 광고가 되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것들보다 훨씬 나쁜 광고들이 미치도록 많은데 저것들이 퇴출 1순위 광고들이라니.
진정 사람들이 그리 생각한다면 참 사람들 한심하다.

여유가 있다면 시간 들여 몇 개의 최악의 광고들 꼽아 왜 그러한지 의미 있게 설명을 하겠지만,
시간이 없으니 최근의 최악 광고들 중 기억에 팍! 남는 것 하나 들어본다.

음료수 '아일락' 광고.

보일락말락보일락말락 아일락이라...
무슨 이따위 광고가 다 있나.
모든 인간들이 그 치맛속을 보고 싶어할 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치마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소녀라니.
또,
실제로 들여다 보고 싶더라도 그 어이 없는 저질 자신감에 짜증이 나야 옳을 터인데,
좋아 하는 꼴의 인간들이 있다니.
아... 정말 이따위 인간들이 있다는 것도 싫고.
소비자들이 대부분 그 수준이라고 가정하고 광고 만들어 내보내는 데 참여한 모든 인간들이 싫고.
내가 강제로 그런 쓰레기 수준의 소비자 집단에 속하여진 데 화가 나서 미치겠다.

광고 얘길 하니 사람들의 반응이 심했던 다른 광고가 생각난다.
 '10억원을 받았습니다' 광고.

이것에 분노를 한다고?
그 광고의 분위기는 분명
"죽은 남자가 가장이던 행복한 집.
그 남자 '밑에' 믿고 살림 꾸려 가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앞길이 막막할 것 같은 전업 주부.
그들의 어린 아이들."
이 배경으로 느껴지지 않던가.
(물론, 나는 저런 형태의 가정 모습이 많다고 가정하는 사회도 정말 싫다.
하지만, 이 광고에 대한 반응에서는 그 문제가 중심이 아니었으니 일단 지나간다.)
그리고 보험사 직원이 찾아왔을 때의 죽은 이 아내의 미소는
슬프고 기운이 빠져 있지만 도움을 주러 찾아온 사람에게 울상 보일 수 없어 짓는 서늘한 미소 같지 않던가.
(그 광고 처음 보고 정말 그 여배우가 연기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 주부가 가장이 되어 다시 그 가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바탕이 되어 준다는 광고로 느껴지지 않던가.
(사회 생활 멈춘지 오래 되었는데 그제서야 직장을 가질 준비를 시작하는 주부가 안정적인 경제력을 가질 때까지 돌보아 줄 바탕 말이다. 이 광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그 주부가 10억원으로 그냥 소비만 하며 살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도 젊은 어머니가 돈 생겼다고 놀고 먹는 꼴을 보일 순 없을 테니.)
보험사 직원 역에 젊은 남자 배우를 쓴 것은,
보통 짧은 광고 안에 성인 남성, 여성, 아이들을 고루 등장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여서가 아닐까.
그것이 거슬려서 보험사 직원 역에 여성을 썼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또 '못된 아줌마들. 작당을 하여...' 따위의 반응이 나왔을 테지.

사람들이 이리 지질했나?
아일락 광고는 사람들이 지질하다고 가정을 하고 있는데, 아... 인간들이 정말 이렇게 지질했던건가?

아... 혐오.

쭈욱 좋아왔던 광고들도 있지.
리바이스와 스카이 폰 광고들.
음... 이 글에서는
위에 내가 꼽은 혐오 광고들을 물리칠 수 있는,
의식 면에서도 강한 건전함을 보여준 광고들을 좋은 광고의 예로 드는 것이 필요한데,
분명히 그런 광고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뭐 굳이 그런 광고들을 기억해 내지 않더라도,
리바이스와 스카이 폰 광고들도
관능적인 면을 가졌으면서도 문제를 가져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런 면의 가치가 있으니
이 글의 이 자리에 들어올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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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0 07:12 2007/06/1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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